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이집트 (문단 편집) === [[이집트 신왕국]] ([[이집트 제국]])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_l20pUv_0uKR_48s3TE_y5g.jpg|height=350]]}}}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800px-CairoEgMuseumTaaMaskMostlyPhotographed.jpg|height=350]]}}} || || '''{{{#A0522D [[카데시 전투|{{{#A0522D 카데시 전투}}}]]}}}''' || '''{{{#A0522D [[투탕카멘의 가면|{{{#A0522D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}}}]]}}}''' || 이집트 신왕국은 '''이집트 제국'''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이집트의 영광이나 부유함이 정점을 찍었던 시대였다. 또한 현대인들에게도 유명한 파라오들 대다수가 바로 이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인데, 가장 대표적으로 여성 파라오 [[하트셉수트]], 전쟁왕 [[투트모세 3세]], 최초의 유일신앙을 내세운 [[아케나텐]], 소년왕 [[투탕카멘]], 이집트 최고의 군주 [[람세스 2세]] 등이 모두 이 신왕국의 군주들이다. 신왕국은 [[이집트 제18왕조]]의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의 시절에 크게 영토와 영향력을 넓히며 인근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했고, 투트모세 3세의 후계자 [[아멘호테프 3세]] 역시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신전들을 건립하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. 아멘호테프 3세 사후 즉위한 아케나텐은 갑작스레 이집트의 전통 신앙을 부정하고 유일신 [[아텐]] 신앙을 내세우며 사회의 급변을 일으켰다. 그러나 그것도 잠시, 아케나텐이 죽자 이집트는 옛 신앙으로 돌아갔고 아케나텐의 아들 [[투탕카멘]] 시대에 이집트는 아케나텐이 없던 것처럼 되어버렸다. 단명한 투탕카멘 이후[* 지금이야 투탕카멘이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존재감이 없던 군주였다.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무덤의 크기도 작고 아는 이들도 없어 무덤이 도굴당하지 않고 세상에 발견될 수 있었다. 너무나도 존재감이 없어 현대에 가장 유명해진 아이러니한 케이스.] 여러 파라오들을 거쳐 마침내 이집트 신왕국은 [[이집트 제19왕조]]의 [[람세스 2세]] 대왕에 이르렀다. 람세스 2세는 중동의 패권국 [[히타이트]]와 [[카데시 전투]]를 벌여 오리엔트의 패권을 다투며 이집트의 최대 강역을 이룩했고, [[아부심벨]]이나 라메세움 등 수많은 건축물들을 건설해 이집트의 황금기를 오랫동안 통치했다.[* 참고로 람세스 2세는 91세에 죽었다. 미라를 부검해본 결과 그가 죽을 시점에 이미 관절염, 충치 등 수많은 지병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.] 람세스 2세가 죽자 신왕국은 서서히 쇠락했고, 결국 기원전 1077년에 멸망했다. 신왕국이 멸망한 배경에는 당시 지중해 세계 전체에서 일어나던 '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'가 있었다. 정체불명의 [[해적]] 집단인 [[바다 민족]]들이 등장해 지중해의 [[미케네 문명]], 소아시아의 [[히타이트]] 등 전통적인 지중해의 강대국들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문명 세계를 암흑으로 되돌린 사건으로, 개중 가장 강력했던 이집트 역시 이 시대의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. 바다 민족들은 해적 함대를 꾸려 나일 강의 항구도시들을 습격했고, '최후의 위대한 파라오'라 불리는 [[이집트 제20왕조]]의 [[람세스 3세]]가 이들을 격퇴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신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이마저도 하지 못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